2009년 10월 02일
SeeD 박정훈 형의 장례식을 다녀오고
음... 쓸지 말지 고민했지만,
간단히라도 기록을 남겨둬 잊지 말아야 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첫 사회 생활을 함에 있어서 중요했던 선배가 둘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정훈 형 (SeeD)이었다.
업계의 가장 가까운 멘토이기도 했고 소중한 친구이기도 했던 그는 팡야라는 게임을 통해
한국 캐주얼 게임계에서 대중적으로 모에 캐릭터물을 성공시킨 처음이자 가장 큰 사례이기도 했다.
(국내 업계 정서상 성공적인 게임성을 포함하여 이런 결과물이 나올 기회는 초극단적으로 떨어진다)
팡야의 캐릭터 관련 원화만 맡았다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정말 말도 안되게 다양한 부분에 전방위로 관여하며 프로젝트에 애착을 보였으니까.
이와 관련해서 본인을 지칭할 때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닌 '개발자'라고 인식하던 부분은
캐릭터 디자인을 하는 원화가나 그래픽 디자이너들도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캐릭터와 게임관을 앞으로도 꾸준히 보여줄 여지가 풍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올 봄까지만 해도 힘든 항암치료를 이겨내며 거의 완치 된 줄 알았던
후천성 백혈병에 의해 너무 쉽사리 세상을 떠나보내고야 말았다.
'결혼식을 해야 할 나이에 장례식을 하다니...'
정훈형 아버지께서 장례식을 정리하며 말씀하셨던, 마음에 사무치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저와 많은 사람들, 그리고 형의 캐릭터들은 절대로 형을 잊어버리지 않을 거에요.
당신의 뜨거운 개발 애착과 열정도 잊지 않으리.
http://pangya.gametree.co.kr/Condolence/default.aspx
엔트리브의 추모 페이지
간단히라도 기록을 남겨둬 잊지 말아야 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첫 사회 생활을 함에 있어서 중요했던 선배가 둘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정훈 형 (SeeD)이었다.
업계의 가장 가까운 멘토이기도 했고 소중한 친구이기도 했던 그는 팡야라는 게임을 통해
한국 캐주얼 게임계에서 대중적으로 모에 캐릭터물을 성공시킨 처음이자 가장 큰 사례이기도 했다.
(국내 업계 정서상 성공적인 게임성을 포함하여 이런 결과물이 나올 기회는 초극단적으로 떨어진다)
팡야의 캐릭터 관련 원화만 맡았다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정말 말도 안되게 다양한 부분에 전방위로 관여하며 프로젝트에 애착을 보였으니까.
이와 관련해서 본인을 지칭할 때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닌 '개발자'라고 인식하던 부분은
캐릭터 디자인을 하는 원화가나 그래픽 디자이너들도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캐릭터와 게임관을 앞으로도 꾸준히 보여줄 여지가 풍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올 봄까지만 해도 힘든 항암치료를 이겨내며 거의 완치 된 줄 알았던
후천성 백혈병에 의해 너무 쉽사리 세상을 떠나보내고야 말았다.
'결혼식을 해야 할 나이에 장례식을 하다니...'
정훈형 아버지께서 장례식을 정리하며 말씀하셨던, 마음에 사무치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저와 많은 사람들, 그리고 형의 캐릭터들은 절대로 형을 잊어버리지 않을 거에요.
당신의 뜨거운 개발 애착과 열정도 잊지 않으리.
http://pangya.gametree.co.kr/Condolence/default.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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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10/02 17:34 | Real | 트랙백 | 덧글(16)









